소설

마지막 휴가 1화 "일상의 균열"

매드러브풋볼 2025. 2. 5. 00:53
728x90

아침 6, 자명종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오늘 하루도 시작이다. 어제는 10시간 근무를 하는 날이었기에 퇴근을 해야 했지만, 어찌나 피곤했는지 나도 모르게 잠에 들어버렸다.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특히  202호 그 여자가 날 봤으면 관리사무소장에게 얼마나 욕하며 민원을 넣었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오만 가지 생각과 함께 일어난 뒤,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 후 잠시 앉아서 밖을 바라보니 단풍잎이 빨개지고 있었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맑은 공기와 산뜻한 바람 때문에 행복하기만 했던 초가을, 그러나 이제는 그 많은 단풍잎을 온종일 허리 굽어 쓸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기에 마음이 심란해지기만 한다. 그리운 그 시절. 사랑하는 아내, 넓은 집, 좋은 직장 모든 걸 갖고 있던 나는 이제 1.5평 넓이의 경비실에서 살며 삶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중이다. 여러 일을 하며 한 푼 두 푼, 악착같이 모은 돈도 1년 전쯤 갑자기 찾아온 심근경색 수술비에 전부 써버렸기에, 나는 정말로 가진 것이 없다. 기껏해야 저기 앞에 세워져있는 낡은 자전거정도. 잠깐의 회상도 잠시, 아침 업무를 시작하였다. 일단 제일 먼저 청소를 시작했다. 이곳저곳에 떨어져 있는 담배꽁초, 도대체 이 조그만한 막대기가 뭐가 좋다고 그렇게 피워대는지.. 이후에는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러갔는데, 누군가가 그린티 티백을 음식물 쓰레기에 미친 듯이 버려놨다. 티백은 일반쓰레기라고 이렇게 크게 써놓았건만 왜 자꾸 음식물쓰레기에 버리는지, 그렇게 음식물 쓰레기 악취를 맡으며 뒤처리를 한다. 그렇게 일을 마치니 정오, 김밥 한 줄 산 뒤에 경비실로 돌아와서 먹는다. 그렇게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 202호 여자가 눈앞에 나타난다.

 

또 일 안 하고 밥만 먹고 있어요? 저희 관리비로 월급 받으면서 일하시면 일 좀 하세요. 이런 경비원이 진짜 왜 있는지 모르겠네.”

 

속은 울컥하며 화가 미친 듯이 치밀어 오르지만, 겉으로는 죄송하다 하며 진정시키고 돌려보낸다. 저 여자는 언제 이사하는 걸까? 이 생각만 수백 번째 되뇌이고 있다. 점심을 다 먹은뒤에 오후 일과를 시작한다. 1시에 1401호의 이삿짐 옮기는 것을 도와줬다. 허리가 미친 듯이 아팠지만 내색할 수도 없었다. 이삿짐을 다 옮기니 5시. 옮긴 뒤에는 지하 주차장을 순찰했다. 1701호 주민이 길고양이가 자동차를 할퀴어 자동차가 손상됐다는 민원을 넣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주차장을 구석구석 돌다가 30분 만에 고양이를 발견했다. 그런데 자식 두 마리와 함께 있는 이 녀석, 녀석도 나름의 삶을 위해 주차장으로 들어왔을 것을 생각하니 딱하긴 하나 나는 이 녀석을 쫓아내야만 한다. 내가 살기 위해 이 가녀린 생명 하나 쫓아내야 하는 운명. 내 처지가 정말 딱하단 생각이 든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 보니 어느덧 저녁 6. 편의점에서 도시락 하나 사 와서 먹는다. 20분 정도의 식사를 마치고, 30분 정도 눈을 감아본다. 모두가 저녁을 먹고 있기에 그나마 제일 여유 있는 이 시간, 잠시나마 눈을 붙이고 일어난다. 이후 10분 정도 멍하니 앉아있었는데, 전화기에서 전화가 왔다. 1102호였는데, 집 천장에서 물이 샌다는 것이었다. 누수 전문 업체를 불러야지 왜 나한테 전화를 걸까.. 이 생각밖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했다. 안 가면 또 나에 대한 민원이 들어올 거니까, 그렇게 1102호에 가서 한 번 봐보니 역시나 경비원 수준에서 끝날 일이 아니었다. 누수 전문 업체를 부르라고 했는데, 1102호 애 엄마가 하는 말

 

누수 업체 부르는 돈 아저씨가 내줄 거에요?”

 

순간적으로 화가 미친 듯이 치밀어 올랐으나 참아야만 했다. 어쩔 수 없다고, 상태가 꽤 심각하다고, 죄송하다고 말하며 집을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며 생각했다.

 

내가 뭘 잘못했지?

 

난 내 일을 했을 뿐인데?

 

 

또 다시 나의 처지에 대한 푸념을 하며 정말 이 아파트에서 나를 제대로 대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눈앞에 내 방금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알려주는 유일한 한 명이 나타났다. 402호 집 아들 가온이, 어찌나 착한지 나한테 늘 꼬박꼬박 감사하다며 인사를 건네주고, 경비실에 가끔 막대사탕이나 음료수도 두고 가준다. 그 어린 애의 마음이 따뜻함에 늘 감동한다.

 

경비아저씨 안녕하세요!”

응 가온이 학원 다녀오니?”

!”

그렇구나,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아저씨

 

잠깐의 행복과 따뜻함도 잠시, 이 어린 아이와 한 짧은 대화가 오늘 한 내용 중 가장 행복한 이야기란 걸 느끼자 또다시 내가 처량해진다. 그렇게 힘없는 발걸음으로 다시 경비실로 돌아온 뒤 청소 도구를 챙기고 밤 청소를 시작했는데, 역시나 아침에 청소했는지 모를 정도로 또 다시 쓰레기가 길에 가득했다. 또 한 번 허리를 굽히고 청소를 마치니 어느덧 밤 10. 오늘은 24시간 내내 일하는 날이기에 경비실에서 자고, 내일은 10시간 일한 뒤 찜질방에서 자야 한다. 고됐던 하루를 어느 정도 마치고, 새벽 근무는 누군가 필요해서 부를때 일어나기에, 잠을 청하려 잠시 누우려던 그 순간, 오랫 동안 알람이 울리지 않았던 내 오래된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전화가 온 것 자체가 무척 오랜만이었기에 호기심에 전화를 받아보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보세요

 

그러자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태 고모부 맞아요?”

 

나는 또 한 번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너 경태니?”

 

네 고모부.”

 

내 조카 경태였다. 목소리를 들은 것도 5년 만인거 같았다. 

 

"오랜만이구나 경태야, 갑자기 무슨 일이야? 내 번호는 어머니가 알려줬니?"

 

"네, 어머니한테 물어봤었어요. 그리고 말씀 드릴게 있어요."

 

잠깐의 대화였지만, 나는 경태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챘다. 어딘가 근심이 쌓여 있고, 굳은 결심을 한 목소리였다.

 

"무슨 일 있니 경태야?"

 

나는 걱정과 불안을 조금 담아 질문을 건넸다.

 

"엄마가 말하지 말라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고모부한테는 말씀드려야할 것 같아요. 정미 고모가 많이 아파요. 말기 암이시래요."

 

그 순간 내 심장은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휴대폰이 다시 울렸지만,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뒤에 나는 미친 사람처럼 혼잣말을 시작했다.

 

"뭔 소리야, 이정미가 암이라고? 말이 안 돼. 누구보다 밝고 강인한 사람인데.."

 

나의 정신이 미친듯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무너질 것 다 무너지고, 떠날 사람 다 떠난 내 인생에 꼭꼭 감춰두었던 마지막 하나가 사라져가는 느낌이었다. 나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일 이정미, 그런 그녀 소식을 왜 조카한테 건너건너 듣고 있냐고? 내 인생의 모든 걸 바꿔놓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누구보다 다사다난한 인생을 산 나. 나는 아파트 경비원 박순태다.